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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위치.
전주교구의 제2성지라고 불리우는 여산은 천주교 저래가 다른 지역보다 앞섰고 또한 박해의 역사가 어느 지역보다도 길었다.
이곳 순교의 특징은 공동체적 성격이라는 점이다. 잡혀 온 교우들은 옥중에서도 항상 쉬지 않고 공동으로 기도를 바치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무수한 고문과 매질의 고통과 굶주림을 견디어 내다, 마침내 차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특히 여산에서는 백지사형(白紙死形)으로 많은 교우가 순교했다.
처형장에서 얼굴에 달라 붙은 백지로인해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두력보 고통스러운 죽음뒤에 찾아올 주님의 세계를 그리며 숨져간, 수 많은 천주교인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여산에는 수 많은 천주교인들을 문초하고 사형선고를 하던 여산 동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93호)이 잘 보존되어
남아 있고 동헌 마당에는 유명한 대원군 척화비(斥和碑)가 세워져 있다.
백지사 터는 동헌 옆의 숲에 있는데 순교비와 백지사(白紙死)기념비가 대형 십자가 곁에 우뚝 서 있어 그날의 아픔을 조용히 증언해 주고 있다.
여산에는 박해 당시 부사(府使)와 진영(鎭營)이 있었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을 마구잡이로 처형시킬 수 있었다.
1868년(무진박해)에 금산(錦山), 진산(珍山), 고산(高山)등 심산 유곡에 숨어 살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잡혀 이곳
여산으로 끌려 들어와 처형되있는데 기록에 남겨진 순교자는 불과 26명 만이 전해지고 있다.
김성첨((토마스)은 ‘넓은 바위’에서 가족 6명이 함께 처형되었는데,처형전에 교우들을 격려하며 곧 천국이 눈앞에 펼쳐지니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기쁘게 감내하자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이들은 옥중에서도 한 형제처럼 서로 아끼고 위하며 사랑을 실천했으며 그 형제애적 사랑은 형장에서 차례로 죽을을 맞으면서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치명일기」의 기록을 보자.

김성첨(토마스)―본디 함양사람으로 고산 넓은 바위(넙바위, 廣岩)에 와서 살 때, 병인군난(1866년)에 그의 사촌 프란치스코 대신으로 잡혔다가 놓였더니, 무진(1868년) 9월에 다시 여산 포교에게 잡혀 목이 졸려 치명하니 나이는 62세요, 때는 무진 10월 10일이었다.

김 안드레아― 김 프란치스코의 큰 아들이다. 무진 9월에 여산 포교에게 부자가 함께 잡혀 목이 졸려 치명하니 나이는 62세 였다. ·김 야고보―김 프란치스코의 둘째 아들이다. 다른 교우와 함께 옥문 밖에서 교(絞)하여 치명하니 때는 무진 10월 10일이요, 나이는 47세 였다.

손마리아, 혹은 막달레나― 금산 개죽리 사는 한첨지의 며느리이다. 그 장부와 함께 잡혀, 장부는 매에 못이겨 배교
하였더니, 그 아내의 설득으로 다시 참회하고 내외 함께 목이 졸려 치명하니 나이는 27세요 때는 무진 10월이었다.

전 루치아― 진산 사람이요, 공주 진밭에서 살던 문서방의 아내이다. 자원하여 전주에 들어가 옥에 갇히었더니 후에
여산으로 이송되어 목이 졸려 치명하니 나이는 35세요, 때는 정묘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