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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완산구 서(西)서학동에 위치(원주 교구 모재사적지참조)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南鐘三, 요한)의 큰 아들 남명희(南明熙)와 역시 새남터에서 남종삼과 함께 순교한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의 아들이 물에 수장되어 처형된 곳이 바로 이곳 초록바위이다.
남종삼이 처형되고 난 후 부친 남상교와 큰 아들 남명희는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를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14세 였던 남명희는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남명희는 국법에 따라 성인(15세)이 되는 이듬해까지 처형이 연기되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전라 감사(監司)는 “너마저 죽으면 너의 집안은 대가 끊기게 되니 배교하고 풀려나가 새 삶을 찾으라.”고 수차례에 걸쳐 권고하였으나 어린 소년은 입을 꼭 다문채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그의 믿음이 이처럼 강한데 놀란 감사는 이 어린 소년을 꼭 살려 주고 싶어“너는 내년이면 성인이 된다. 그때까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국법에 따라 나는 너를 죽여야만 한다. 그러니 제발 잘 생각해다오.”하며 회유했지만 끝내 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마침내 두 소년(남명희와 성명미상의 홍봉주 아들)은 성년(15세)이 된 이듬해 이 곳 전주천 옆의 초록바위 아래로
떠밀려 순교하니 남씨 집안은 3대(代)가 순교의 화관을 받은 셈이다.

고종실록에 나타난 남종삼 가족의 처벌 요청과 그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고종실록 3권, 3년 1월 24일 (갑신)

의정부에서 제의하였다.
‘대사헌 임긍수(林肯洙)가 올린 글을 보니 남종삼(南鐘三)의 아비 남상교(南尙敎)에 대하여 의금부를 시켜 잡아다가 신문하여 진산을 밝혀낸 다음 사형에 처하도록 할 것을 제의하였으며, 남종삼과 홍봉주의 자식들이 나이는 비록 차지 않았다고 하어라도 흉악한 종자(種子)들을 자라게 내버려 둘수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상교를 하루 빨리 의금부로 하여금 처단케 하고, 두 역적의 처자들을 처단하는 문제는 대간들의 제의가
많이 제기 되고 있으므로 아직은 처리 할 수 없습니다.

고종실록 3권 3년 2월 6일(병신)

제천 현감 유남규(柳南珪)가 올린 보고를 받아보니 죄인 남종삼의 처 이씨(李氏)는 창녕현(昌寧懸)으로, 9살짜리 딸은 산청현(山淸懸)에, 7살짜리 딸은 영산현(靈山懸)에 보내어 여종으로 삼고, 4살짜리 아들은 의령현(宜寧懸)에 보내어 종으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해당 현의 옥에 가두어 놓고 잇으므로 형조로 하여금 각기 해당 귀양지에 압송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비 남상교(南尙敎)는 공주 진영(公州 鎭營)에 엄하게 가두어 놓고 잇으며, 그의 아들 남명숙(南明淑, 남명희의 오기인 듯)은 전주(全州) 진영에 엄하게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